注
○王念孫曰 教出은 當爲教士니 謂常所教習之士也라
大戴禮虞戴德篇云 諸候相見에 卿爲介라 以其教士畢行이라하여 文與此同也라
下文君子聽律習容而後士
의 士
는 當爲出
이니 言必聽律習容而後出也
注+① 楊云 라하니라라
玉藻云 習容
하고 觀玉聲乃出
注+② 鄭注曰 玉은 佩也라하니라이라하니 是其證也
라
隸書
엔 士出二字相似
하여 傳寫往往譌溷
注+③ 隸書엔 出字或省作士하니 若𢾍省作敖어나 賣省作賣어나 𢾕省作款이 皆是也라 故諸書中에 士出二字 傳寫多誤라 僖二十五年左傳에 諜出曰 原將降矣라하여늘 呂氏春秋爲欲篇에 諜出譌作謀士하고 管子大匡篇에 士欲通하되 吏不通이 今本士譌作出하고 史記呂后本紀의 齊內史士에 徐廣曰 一作出이라하고 夏本紀에 稱以出이 大戴禮五帝德篇에 作稱以上士하니 皆其證也라이라 楊說皆失之
라
〈평소에〉 전투교육을 받은 위사衛士를 모두 데리고 가며
注
양경주楊倞注:교教는 경계하는 명령을 이른다. 필행畢行은 뭇 신하들이 모두 군주를 따라가는 것을 이른다.
○왕염손王念孫:‘교출教出’은 마땅히 ‘교사教士’로 되어야 하니, 평소에 전투기술을 가르쳐 익힌 위사衛士를 이른다.
≪대대례기大戴禮記≫ 〈우대덕편虞戴德篇〉에 ‘제후상견諸候相見 경위개卿爲介 이기교사필행以其教士畢行’이라 하여 글이 여기와 같다.
아랫글(27-82) ‘
군자청율습용이후사君子聽律習容而後士’의 ‘
사士’는 마땅히 ‘
출出’이 되어야 하니, 이 뜻은 반드시 〈걸을 때 패옥소리가〉 음률에 들어맞는가를 들어보며 태도를 〈법도에 맞게〉 연습한 다음에 문을 나선다는 말이다.
注+楊氏가 “聽律은 패옥소리를 듣고 그것이 음률에 맞게 하는 것을 이른다.”라고 하였다.
≪
예기禮記≫ 〈
옥조玉藻〉에 “
습용習容 관옥성내술觀玉聲乃出(태도를 〈법도에 맞게〉 연습하고 패옥소리가 〈걸음걸이의 박자와 서로 맞는지를〉 살펴본 다음에야 문을 나선다.)”이라 하였으니,
注+鄭玄의 주에 “玉은 몸에 차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그 증거이다.
예서隸書에는 ‘
사士’와 ‘
출出’ 두 자가 서로 비슷하여 옮겨 쓸 때 늘 잘못 뒤섞인다.
注+隸書에는 ‘出’자가 간혹 생략되어 ‘士’으로 되어 있기도 하니, 이를테면 ‘𢾍’가 생략되어 ‘敖’로 되거나, ‘𧷓’가 생략되어 ‘賣’로 되거나, ‘㱁’이 생략되어 ‘款’으로 된 것과 같은 것이 모두 이 경우이다. 그러므로 여러 문헌 속에 ‘士’와 ‘出’ 두 자가 옮겨 쓰는 과정에 잘못되는 일이 많다. ≪春秋左氏傳≫ 僖公 25년에 “諜出曰 原將降矣(간첩이 〈原나라 성에서〉 나와 ‘原나라가 곧 항복할 것입니다.’라 했다.)”라 하였는데 ≪呂氏春秋≫ 〈爲欲篇〉에 ‘諜出’이 잘못되어 ‘謀士’로 되어 있고, ≪管子≫ 〈大匡篇〉에 “士欲通 吏不通(士는 〈관리와〉 소통하려 하는데도 관리가 소통하지 않을 때는)”이라 한 곳의 ‘士’가 지금 판본에는 잘못되어 ‘出’로 되어 있고, ≪史記≫ 〈呂后本紀〉의 “齊內史士(齊나라 內史인 士가)”라 한 곳에 徐廣이 “〈士가〉 어떤 판본에는 ‘出’로 되어 있다.”라 하고, ≪史記≫ 〈夏本紀〉에 “稱以出(모든 것이 법도에 들어맞은 뒤에 행동하였다.)”이라 한 것이 ≪大戴禮記≫ 〈五帝德篇〉에 ‘稱以上士’로 되어 있으니, 이것이 모두 그 증거이다. 양씨楊氏의 설은 모두 잘못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