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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集解(1)

순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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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집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72 譬之컨대 猶以指測河也 以戈舂黍也 하여
○ 謝本從盧校하여 飡作飱이라
盧文弨曰 飱同餐이라
王念孫曰 呂錢本作飡하고 元刻作𩛈하니라
案說文 𩚏 餔也 從夕食하고 思魂切이라하고 呑也 從食𣦼聲하고
或從水作湌이라
七安切이라하니라
玉篇廣韻 𩚏作飧이나 而飧餐二字 皆異音異義
古音餐屬寒部하고 飧屬魂部
故魏風伐檀首章之餐 與檀干漣廛貆爲韻하고 三章之飧 與輪漘淪困鶉爲韻하여 兩字判然不同이라
自爾雅釋文始誤以餐爲飧이어늘 而集韻遂合餐飧爲一字矣
今俗書飧字作𩛈이어늘 而錢本作飡하니
自是湌之俗字 非飧字也
盧從元刻作飱하여 云𩛈同餐이라하니 非是
先謙案 王說是
今依呂錢本正作飡이라
以錐飡壺 言以錐代箸也
古人貯食以壺
라하고 韓非子 晉文公出亡할새 箕鄭挈壺飡以從이라하니 皆其證이라


비유하자면 마치 손가락으로 강물의 깊이를 헤아리고, 창으로 수수를 방아 찧고, 송곳으로 박 속을 긁어먹는 것과 같아서
사본謝本노교본盧校本을 따라 ‘’이 ‘’으로 되어 있다.
노문초盧文弨 : ‘’은 ‘’과 같다.
왕염손王念孫 : 전본錢本에는 ‘’으로 되어 있고 원각본元刻本에는 ‘𩛈’으로 되어 있다.
살펴보건대, 《설문해자說文解字》에 “𩚏은 저녁 새참이란 뜻이니 형부形符가 되고 반절反切이다.” 하고, “은 삼킨다는 뜻이니, 이 딸렸고 𣦼은 음이다.
혹은 가 붙어 ‘’으로 쓰기도 한다.
반절反切이다.” 하였다.
옥편玉篇》과 《광운廣韻》에 ‘𩚏’이 ‘’으로 되어 있으나 ‘’과 ‘’ 두 자는 모두 음이 다르고 뜻도 다르다.
고음古音에 ‘’은 한부寒部에 소속되어 있고 ‘’은 혼부魂部에 소속되어 있다.
그러므로 《시경詩經》 〈위풍魏風 벌단伐檀수장首章의 ‘’은 과 같은 운이 되고, 삼장三章의 ‘’은 과 같은 운이 되어 두 글자가 완전히 서로 다르다.
이아석문爾雅釋文》에 처음 잘못하여 ‘’을 ‘’이라고 하였는데, 《집운集韻》에서 마침내 ‘’과 ‘’을 합쳐 한 글자로 표기한 것이다.
지금 세간에 유행하는 서체는 ‘’자를 ‘𩛈’으로 쓰는데 전전본錢佃本에 ‘’으로 되어 있다.
’은 본디 ‘’의 속자이지 ‘’자가 아니다.
그런데 노씨盧氏원각본元刻本을 따라 ‘’이라 하면서 “‘’은 ‘’과 같다.”라고 하였으니, 옳지 않다.
선겸안先謙案 : 왕씨王氏의 설이 옳다.
여기서는 전본錢本을 따라 바로잡아 ‘’으로 고쳤다.
이추손호以錐飡壺’는 송곳으로 젓가락을 대신한 것을 말한다.
옛사람들은 음식을 병 속에 담았다.
전국책戰國策》 〈중산책中山策〉에 “군주께서 병 속에 든 밥을 내려 신의 아비를 먹였습니다.”라고 하고, 《한비자韓非子》에 “ 문공文公이 외국으로 도망갈 때 기정箕鄭이 병 속에 든 밥을 들고 뒤를 따랐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모두 그 증거이다.


역주
역주1 以錐飡壺也 : ‘飡壺’에 대해 王先謙은 《戰國策》과 《韓非子》에 나오는 ‘壺飡’을 근거로 ‘병 속에 담은 밥’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鍾泰(1888~1979)는 《荀註訂補》에서 《詩經》 〈豳風 七月〉에 “팔월에 이르러선 표주박 따고[八月斷壺]”를 근거로 ‘壺’는 ‘瓠(표주박)’의 假借字라고 하면서 王先謙의 설에 이의를 제기하였는데, 王天海도 《鶡冠子》 〈學問〉의 “강 中流에서 배를 잃으면 바가지 하나 값이 천금이다.[中流失船 一壺千金]”라고 한 것을 예로 들며 그에 동의하였다. 곡물인 수수를 ‘병’과 대를 맞추기보다는 역시 먹을거리인 ‘박’과 대를 맞추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으로 보여 이에 따라 번역하였다. 박 속을 긁을 때는 숟가락을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역주2 中山策 君下壺飡臣父 : 中山策은 《戰國策》의 편명이며, 본문에는 “君下壺飡餌之 臣父且死”로 되어 있다.

순자집해(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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