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양경주楊倞注:≪춘추후어春秋後語≫에 “소진蘇秦이 조 숙후趙 肅侯를 유세할 적에 숙후肅侯의 아우 봉양군奉陽君이 재상으로 있으면서 소진蘇秦을 좋아하지 않으니, 소진蘇秦이 마침내 조趙나라를 떠났다.”라 하고,
또 ≪전국책戰國策≫ 〈조책趙策〉에서 “소진蘇秦이 조趙나라 왕을 유세하기를 ‘천하의 경상 대신卿相 大臣에서부터 일반 선비에 이르기까지 대왕께서 인의仁義을 행하시는 행위를 높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어 모두 대왕 앞에서 가르침을 받들거나 충언忠言을 올리기를 원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봉양군奉陽君이 인재를 질투하여 대왕으로 하여금 국사를 전담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빈객과 유세하는 사람을 멀리하여 감히 대왕 앞에 충언忠言을 올린 자가 없었습니다.’라고 했다.”라고 하였다.
노장용盧藏用이 “봉양군奉陽君의 이름은 성成이다.”라고 하였으나, 또 ≪춘추후어春秋後語≫를 살펴보면 봉양군奉陽君이 죽은 뒤에 소진蘇秦이 비로소 연燕나라에서 들어와 숙후肅侯에게 합종合從에 관한 일을 유세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공자성公子成은 무령왕武靈王 때 오히려 호복胡服을 입으려고 하지 않았으니, 공자성公子成은 봉양군奉陽君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