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王念孫曰 治字
는 義不可通
이라 治
는 當爲冶字之誤也
라 不冶觀者之耳目
은 謂不爲(袄)[祅]辭以惑衆人之耳目也
라注+(袄)[祅]辭는 見上文이라
文選南都賦
에 侍者蠱媚
라하여늘 에 蠱音冶
라하고 劉良曰 蠱媚
는 美容儀也
라하며
舞賦에 貌嫽妙以妖蠱라하여늘 五臣에 作妖冶라 後漢書張衡傳에 咸姣麗以蠱媚의 注曰 蠱音野라 謂妖麗也라하니
是冶卽蠱惑之蠱也라 不冶觀者之耳目과 不賂貴者之權勢 二句一意相承이라
據楊注云 其所辯說이 不求夸眩於衆人하면 則所見本當是冶字라 若是治字면 則不得言夸眩於衆矣니 以是明之라
살펴보는 사람의 耳目을 위해 말을 곱게 꾸미지 않으며,
注
楊倞注:그가 하는 논변과 해설은 뭇사람을 현혹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王念孫:
治자는 뜻이 통하지 않는다.
治는 마땅히 ‘
冶’자의 잘못이 되어야 한다. ‘
不冶觀者之耳目’은 기괴한
語辭를 구사하여 뭇사람의 이목을 현혹하지 않는 것을 이른다.
注+祆辭는 윗글에 보인다.
‘冶’와 ‘蠱’는 옛 글자에 통용되었다. ≪集韻≫ 上聲 제35 馬韻에 “蠱는 〈음이〉 以와 者의 반절이니, 요염하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文選≫ 〈南都賦〉에 “侍者蠱媚(시녀들이 요염하였다.)”라 하였는데, 五臣本에 “蠱는 음이 ‘冶’이다.”라고 하였고, 劉良이 “蠱媚는 자태를 아름답게 꾸몄다는 뜻이다.”라 하였으며,
≪文選≫ 〈舞賦〉에 “貌嫽妙以妖蠱(용모가 빼어나 요염하다.)”라 하였는데, 〈妖蠱가〉 五臣本에 ‘妖冶’로 되어 있다. ≪後漢書≫ 〈張衡傳〉에 “咸姣麗以蠱媚(모두 아름다워 요염하다.)”라 한 곳의 주에 “蠱는 음이 ‘野’이다. 요염하고 고운 것을 이른다.”라 하였으니,
이로 볼 때 ‘冶’는 곧 ‘蠱惑’의 ‘蠱’이다. ‘不冶觀者之耳目’과 〈아랫글의〉 ‘不賂貴者之權埶’ 두 구는 한 뜻으로 이어진 것이다.
楊氏의 주에 “그가 하는 논변과 해설은 뭇사람을 현혹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 한 것에 의하면 그가 접해본 판본은 분명히 ‘冶’자일 것이다. 만약 ‘治’자였다면 뭇사람을 현혹한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니, 이를 통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