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 憂忘其身하고 內忘其親하고 上忘其君하면 則是人也而曾㺃彘之不若也라
以君子與小人相賊害也하여 憂以忘其身하고 內以忘其親하고 上以忘其君하면 豈不過甚矣哉아
注
史記伍被曰 吳王兵敗於狐父라하니 徐廣曰 梁碭之間也니 蓋其地出名戈라하나
管子曰 蚩尤爲雍狐之戟과 狐父之戈라하니 豈近此邪아
玉篇에 斸或作钃이나 與斫音異하니 不知楊氏何故同之오
아래로는 자기 한 몸을 잊어버리고 안으로는 자기 부모를 잊어버리고 위로는 자기 군주를 잊어버린다면, 이는 곧 사람으로서 개나 돼지만도 못한 것이다.
대체로 싸운다는 것은 반드시 자기는 옳고 남은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정말 옳고 남이 정말 틀렸다면 자기는 곧 군자이고 남은 곧 소인이다.
군자의 신분으로 소인과 서로 상해를 입혀 아래로는 자기 한 몸을 잊어버리고 안으로는 자기 부모를 잊어버리고 위로는 자기 군주를 잊어버린다면 어찌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니겠는가.
이런 사람은 이른바, 호보狐父에서 만들어진 질 좋은 창으로 쇠똥을 치는 격이다.
注
양경주楊倞注 : 당시 사람들이, 이전부터 이런 말이 있었을 것인데 이는 귀한 것을 천한 데에 사용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사기史記》에 “오피伍被가 말하기를 ‘오吳나라 왕의 군대가 호보狐父에서 패했다.’고 했다.”라고 하였는데, 서광徐廣의 주에 “양군梁郡과 탕산현碭山縣 사이에 있으니, 대체로 그 지방에서 이름난 창이 나왔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관자管子》에 “치우蚩尤가 옹호雍狐의 삼지창과 호보狐父의 장창을 만들었다.”라고 하였으니, 혹시 이것과 유사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촉钃’은 ‘자刺(찌르다)’자의 뜻이니, 음은 지之와 욕欲의 반절反切이다.
그러므로 질 좋은 검을 ‘속루屬鏤’라고 말하니, 그 날카롭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혹은 ‘촉斸’을 ‘작斫(베다)’자로 읽기도 한다.
○ 학의행郝懿行 : ‘촉斸’과 ‘작斫’은 읽는 음이 다르다.
‘촉斸’이 비록 ‘작斫’자의 뜻이긴 하나 ‘작斫’으로 읽지는 않는다.
《옥편玉篇》에 ‘촉斸’이 간혹 ‘촉钃’으로 되어 있으나 ‘작斫’과는 음이 다른데 양씨楊氏가 무슨 이유로 같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본문도 ‘촉斸’자가 없으니, 이 주는 분명히 오탈자가 있을 것이다.
‘촉钃’이 ‘자刺’자의 뜻이란 것도 들어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