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주楊倞注:〈적賊과 도盜는〉 관중管仲과 시인寺人발제勃鞮를 이른다. 도盜 또한 적賊이다. 인재人才가 진실한 품성을 지니면 원수라도 임용하고, 진실한 품성을 지니지 못하면 친척이라도 멀리할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
역주1桓公用其賊 :
桓公은 公子 小白인 齊 桓公을 말하고, 賊은 管仲을 가리킨다. 齊 襄公이 피살된 이듬해인 B.C. 687년에 莒(거)나라에서 귀국한 소백이 魯나라가 公子 糾를 즉위시키기 위해 파견한 군사들과 접전을 벌일 적에 공자 규를 시종하던 관중이 쏜 화살이 그의 허리띠쇠를 명중하여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그러나 즉위한 뒤에 鮑叔의 권유로 관중을 용서하고 재상으로 등용하였다.
역주2文公用其盜 :
文公은 公子 重耳인 晉 文公을 말하고, 盜는 중이의 하인으로 그의 창고를 지켰던 里鳧須를 가리킨다. 중이가 외국으로 망명했을 때 창고의 보물을 훔쳐 도망갔다. 나중에 중이가 국왕으로 즉위하자 찾아와 자기의 죄를 사면해달라고 청하면서 말하기를 “지은 죄가 이처럼 무거운데도 사면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안다면 불안해하는 일반 대중을 안심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므로 그의 계책에 따르고 측근으로 임용하였다.
역주3寺(시)人勃鞮 :
寺人은 宦官을 말한다. 勃鞮는 披(pī)의 음이 둘로 나뉜 것으로, 勃은 p에 해당하고 鞮는 ī에 해당한다. 重耳의 계모인 驪姬가 자기가 낳은 奚齊를 태자로 세우기 위해 여러 公子를 모함하여 궁궐에서 쫓아내고 태자 申生을 죽일 당시, 勃鞮, 곧 披가 晉 獻公의 명으로 중이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자 외국으로 망명하여 19년 동안 각국을 떠돌다가 귀국하여 국왕이 되었는데, 중이의 귀국을 반대한 晉나라 大夫 呂省과 郤芮가 처벌을 받을까 두려워 궁궐을 불살라버리자고 모의하였다. 披가 그 모의를 알고 文公에게 고하자 披의 죄를 사면하고 평소에 국정에 관해 그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晉 文公의 보물을 훔친 도둑은 里鳧須이므로 楊倞의 이 주는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