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양경주楊倞注:명당明堂은 천자가 정사를 베푸는 행궁行宮이다. ‘어새외於塞外’ 세 자는 잘못 덧붙여진 글자이다. 앞에 ‘병불부출어새외兵不復出於塞外’구가 있기 때문에 이 세 자가 잘못 재차 써진 것일 뿐이다.
태殆는 ‘대체로’라는 뜻이다. 진秦나라가 만약 현능한 인물로 하여금 정사를 행하게 한다면 비록 명당明堂을 축조하여 제후들이 와서 알현하게 하는 일이라도 대체로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새외塞外는 국경 밖이고 명당明堂은 단壇이다. 천자가 지방을 순행하는 길에 방악方岳 아래에 이르러 제후들이 모여 알현할 적에, 궁宮을 만드는데 사방 300보步의 면적에 네 개의 문을 트고,
단壇은 사방 12
심尋에 높이는 4
척尺이며 그 위에
방명方明을 올려놓는 것을 이른다.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28년에 ‘
위왕궁어천토爲王宮於踐土(천자의
행궁行宮을
천토踐土에다 만들었다.)’라고 한 것이 또 그와 같은 사례이다.”라고 하였다.
방명方明
또 혹자는 “변방 밖에 명당明堂을 축조한다는 것은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진秦나라를 위해 황제의 행궁行宮을 축조하게 하는 것을 이른다.
≪전국책戰國策≫ 〈한책韓策〉에 ‘한韓 선왕宣王이 장의張儀에게, ‘〈우리 한韓나라가 스스로〉 진秦나라의 한 군현郡縣처럼 되어 진秦나라 왕의 행궁行宮을 짓고 봄가을 제사에 쓸 공물을 바치면서 자칭 진秦나라의 동쪽 번국蕃國이 되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했다.’ 하였으니, 곧 이것이다.”라고 하였다.
○왕염손王念孫:양씨楊氏의 앞 설이 옳다. 뒤의 설들은 모두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