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兪樾曰 楚雖當齊之二面이나 要是一國이니 不當分爲二라 楊注非也라 四字疑衍文이니 當云齊必斷而爲三이라
其下句則云 國若假城耳는 言齊之國若假人之城하여 不久當歸之也라 古四字作亖하여 與三字混이라
疑三譌爲亖이어늘 後人校正作三하고 傳寫者遂竝存四三兩字라
楊氏不能是正하여 以四字屬上讀하고 三字屬下讀하여 而兩句俱不可通矣라
先謙案 議兵篇云 兵殆於垂沙하여 唐蔑死하고 莊蹻起하여 楚分而爲三四라하여늘
史記禮書
에 引作四參
하니 參三同也
注+勸學篇云 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라하여늘 群書治要에 作三省하니 是參三同字之證이라라 據此
컨대 荀子本書必有作四三者
라
三四四三은 總謂國之分裂하니 不爲定數라 此文亦言齊必斷而爲四三하여
與議兵篇楚分而爲四三同意니 國若假城然耳는 自爲一句라 楊注失其讀하고 兪氏又欲減字以成其義하니 皆非也라
국토가 마치 그들의 성을 빌린 것처럼 〈우리에게 소속되지 않아〉
注
양경주楊倞注:제齊나라는 삼국三國이 위탁한 성과 같을 뿐이어서 오래지 않아 분명히 그들에게 귀속될 것이라는 말이다.
○유월兪樾:초楚나라가 비록 제齊나라의 양면을 접하고 있으나 여러 말 할 것 없이 한 나라이니, 마땅히 둘로 나눌 수는 없다. 양씨楊氏의 주는 틀렸다. ‘사四’자는 아마도 잘못 덧붙여진 글자일 것이니, 마땅히 ‘제필단이위삼齊必斷而爲三’이라고 하여야 한다.
그 아래 구에 ‘국약가성이國若假城耳’라고 한 것은 제齊나라가 남의 성을 빌린 것과 같아서 오래지 않아 마땅히 그들에게 귀속될 것이라는 말이다. 옛날에는 ‘사四’자가 ‘사亖’로 되어 있어 ‘삼三’자와 혼동되기 쉽다.
아마도 ‘삼三’이 잘못되어 ‘사亖’가 되었을 것인데, 후세 사람이 교정하면서 ‘삼三’으로 되었고 옮겨 쓰는 사람이 마침내 ‘사四’와 ‘삼三’ 두 자를 함께 그대로 두었을 것이다.
양씨楊氏는 이것을 바로잡지 못하여 ‘사四’자는 위로 붙여 읽고 ‘삼三’자는 아래로 붙여 읽음으로써 두 문구가 다 뜻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선겸안先謙案:〈의병편議兵篇〉에 “병태어수사兵殆於垂沙 당멸사唐蔑死 장교기莊蹻起 초분이위삼사楚分而爲三四(군대가 수사垂沙의 전투에서 위험한 지경에 처하여 대장 당멸唐蔑이 전사하였고, 장교莊蹻가 반기를 들고 일어나서 초楚나라가 갈라져 서너 조각이 되었다.)”라고 하였는데,
≪
사기史記≫ 〈
예서禮書〉에 이것을 인용한 곳에 ‘
사삼四參’으로 되어 있으니, ‘
삼參’과 ‘
삼三’은 같다.
注+〈권학편勸學篇〉에 “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군자가 널리 배우고 또 매일 자기를 점검하고 성찰한다.)”라고 하였는데 ≪군서치요群書治要≫에는 〈그 參省이〉 ‘삼성三省’으로 되어 있으니, 이는 ‘삼參’과 ‘삼三’이 같은 글자라는 증거이다. 이것을 근거로 보건대, ≪
순자荀子≫ 원본에는 분명히 ‘
사삼四三’으로 된 곳이 있을 것이다.
‘삼사三四’와 ‘사삼四三’은 모두 나라가 분열된 것을 이르니, 정해진 숫자가 아니다. 여기 글 또한 제齊나라가 반드시 끊어져 서너 조각이 될 것이라고 말하여,
〈의병편議兵篇〉에 초楚나라가 갈라져 서너 조각이 되었다는 것과 그 뜻이 같으니, ‘국약사성연이國若假城然耳’는 별도로 한 구가 된다. 양씨楊氏의 주는 그 구두를 잘못 끊었고, 유씨兪氏는 또 글자를 줄여 그 뜻을 〈억지로〉 만들려고 하였으니, 모두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