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周公稽古
之道
하고 損益夏殷之典
하여 制禮作樂
하고 以仁義
天下
라 
                        		
                        		
                        		
	                     		
			                       	
			                       	
	                     		
	                     		
		                        
                        	
                        	
                        	
                        	
                        		
                        			
                        			
			                        
                        		
                        		
                        		
	                     		
			                       	
			                       	
	                     		
	                     		
		                        
                        	
                        	
                        	
                        	
                        		
                        			
                        			
			                        
			                        	 에 諸侯力政
하고 逮
之後
하여는 則王道不絕如綫
이라 
			                         
                        		
                        		
                        		
	                     		
			                       	
			                       	
	                     		
	                     		
		                        
                        	
                        	
                        	
                        	
                        		
                        			
                        			
			                        
			                        	故仲尼定禮樂
하고 作春秋
하니 然後
遺風
이 弛而復張
이나 而無時無位
하여 功烈不得被于天下
하고 但門人傳述而已
며 陵夷至于戰國
이라 
                        		
                        		
                        		
	                     		
			                       	
			                       	
	                     		
	                     		
		                        
                        	
                        	
                        	
                        	
                        		
                        			
                        			
			                        
			                        	於是申商苛虐과 孫吳變詐 以族論罪하고 殺人盈城이라
			                         
                        		
                        		
                        		
	                     		
			                       	
			                       	
	                     		
	                     		
		                        
                        	
                        	
                        	
                        	
                        		
                        			
                        			
			                        
			                        	談說者又以愼墨蘇張爲宗하니 則孔氏之道 幾乎息矣라 有志之士 所爲痛心疾首也라
			                         
                        		
                        		
                        		
	                     		
			                       	
			                       	
	                     		
	                     		
		                        
                        	
                        	
                        	
                        	
                        		
                        			
                        			
			                        
                        		
                        		
                        		
	                     		
			                       	
			                       	
	                     		
	                     		
		                        
                        	
                        	
                        	
                        	
                        		
                        			
                        			
			                        
			                        	觀其立言指事에 根極理要하고 敷陳往古하며 掎挈當世하여 撥亂興理를 易於反掌하니 真名世之士며 王者之師라
			                         
                        		
                        		
                        		
	                     		
			                       	
			                       	
	                     		
	                     		
		                        
                        	
                        	
                        	
                        	
                        		
                        			
                        			
			                        
			                        	又其書亦所以羽翼
하고 增光孔氏
하니 非徒諸子之言也
라 
                        		
                        		
                        		
	                     		
			                       	
			                       	
	                     		
	                     		
		                        
                        	
                        	
                        	
                        	
                        		
                        			
                        			
			                        
			                        	蓋周公制作之
하고 仲尼祖述之
하고 荀孟贊成之
하여 所以膠固王道
하여 至深至備
하니 雖春秋之四夷交侵
하고 戰國之
弛絕
이라도 斯道竟不墜矣
라 
                        		
                        		
                        		
	                     		
			                       	
			                       	
	                     		
	                     		
		                        
                        	
                        	
                        	
                        	
                        		
                        			
                        			
			                        
			                        	倞以末宦之暇에 頗窺篇籍하여 竊感炎黃之風이 未洽於聖代나 謂荀孟有功於時政하여 尤所耽慕라
			                         
                        		
                        		
                        		
	                     		
			                       	
			                       	
	                     		
	                     		
		                        
                        	
                        	
                        	
                        	
                        		
                        			
                        			
			                        
			                        	而孟子有
하고 注+臣先謙案 宋台州本作代라亦嘗立博士
하여 傳習不絕
이라 故今之君子多好其書
라 
                        		
                        		
                        		
	                     		
			                       	
			                       	
	                     		
	                     		
		                        
                        	
                        	
                        	
                        	
                        		
                        			
                        			
			                        
			                        	獨荀子未有注解하고 亦復編簡爛脫하며 傳寫謬誤하여 雖好事者時亦覽之라도 至於文義不通하여 屢掩卷焉이라
			                         
                        		
                        		
                        		
	                     		
			                       	
			                       	
	                     		
	                     		
		                        
                        	
                        	
                        	
                        	
                        		
                        			
                        			
			                        
                        		
                        		
                        		
	                     		
			                       	
			                       	
	                     		
	                     		
		                        
                        	
                        	
                        	
                        	
                        		
                        			
                        			
			                        
			                        	未知者謂異端不覽하고 覽者以脫誤不終하니 所以荀氏之書千載而未光焉이라
			                         
                        		
                        		
                        		
	                     		
			                       	
			                       	
	                     		
	                     		
		                        
                        	
                        	
                        	
                        	
                        		
                        			
                        			
			                        
			                        	輒用申抒鄙思하여 敷尋義理하고 其所徵據는 則博求諸書하니라
			                         
                        		
                        		
                        		
	                     		
			                       	
			                       	
	                     		
	                     		
		                        
                        	
                        	
                        	
                        	
                        		
                        			
                        			
			                        
			                        	但以古今字殊하고 齊楚言異하여 事資參考를 不得不廣일새
			                         
                        		
                        		
                        		
	                     		
			                       	
			                       	
	                     		
	                     		
		                        
                        	
                        	
                        	
                        	
                        		
                        			
                        			
			                        
			                        	或取
相近
이어나 聲類相通
하고 或字少增加
어나 文重刊削
하고 或求之古字
하고 或徵諸方言
이라 
                        		
                        		
                        		
	                     		
			                       	
			                       	
	                     		
	                     		
		                        
                        	
                        	
                        	
                        	
                        		
                        			
                        			
			                        
			                        	加以孤陋寡儔와 愚昧多蔽하니 穿鑿之責을 於何可逃리오
			                         
                        		
                        		
                        		
	                     		
			                       	
			                       	
	                     		
	                     		
		                        
                        	
                        	
                        	
                        	
                        		
                        			
                        			
			                        
                        		
                        		
                        		
	                     		
			                       	
			                       	
	                     		
	                     		
		                        
                        	
                        	
                        	
                        	
                        		
                        			
                        			
			                        
                        		
                        		
                        		
	                     		
			                       	
			                       	
	                     		
	                     		
		                        
                        	
                        	
                        	
                        	
                        		
                        			
                        			
			                        
			                        	以文字繁多라 故分舊十二卷三十二篇爲二十卷하고 又改孫卿新書爲荀卿子하니라
			                         
                        		
                        		
                        		
	                     		
			                       	
			                       	
	                     		
	                     		
		                        
                        	
                        	
                        	
                        	
                        		
                        			
                        			
			                        
                        		
                        		
                        		
	                     		
			                       	
			                       	
	                     		
	                     		
		                        
                        	
                        	
                        	
                        	
                        		
                        			
                        			
			                        
			                        	時歲在戊戌 大唐睿聖文武皇帝 元和十三年十二月也
注+盧文弨曰 傳習不絕은 俗間本에 作傳誓不絕하고 申抒는 宋本에 作申杼라 三十二篇四字는 元刻無라 又荀子 序作荀卿子하여 與諸書所引合이라하니라라 
                        		
                        		
                        		
	                     		
			                       	
			                       	
	                     		
	                     		
		                        
                        	
                        	
                        	
                        	
                   			
                        	
                        	
                        	
                        	
	                       	
	                       	
	                       	
	                       	
							                       	
	                        
	                        
	                        	
	                        
	                        	
	                        
	                        	
	                        
	                        	
	                        
	                        	
	                        
	                        	
	                        
	                        	
	                        
	                        	
	                        
	                        	
	                        
	                        	
	                        
	                        	
	                        
	                        	
	                        
	                        	
	                        
	                        	
	                        
	                        	
	                        
	                        	
	                        
	                        	
	                        
	                        	
	                        
	                        	
	                        
	                        	
	                        
	                        	
	                        
	                        	
	                        
	                        	
	                        
	                        	
	                        
	                        	
	                        
	                        	
	                        
	                        	
	                        
	                        	
	                        
	                        	
	                        
	                        	
	                        
	                        	
	                        
	                        	
	                        
	                        	
	                        
	                        	
	                        
	                        	
	                        
	                        	
	                        
	                        	
	                        
	                        	
	                        
	                        	
	                        
	                        	
	                        
	                        	
	                        
	                        	
	                        
	                        	
	                        
	                        	
	                        
	                        	
	                        
	                        	
	                        
	                        	
	                        
	                        	
	                        
	                        	
	                        
	                        	
	                        
	                        
	                        
                        	
		                        
		                        
		                        
		                        
                        		
                        	
		                        
		                        
		                        
		                        	
		                        	
		                        
		                        
                        		
                        		
                        			
			                        
			                        	《荀子》의 서문
注+신臣 선겸先謙이 살펴보건대, 송宋 태주본台州本에는 ‘서序’ 위에 ‘주注’자가 있다.      
                        			
                        		
                        		
	                     		
			                       	
			                       	
	                     		
		                        
                        	
		                        
		                        
		                        
		                        
                        		
                        	
		                        
		                        
		                        
		                        	
		                        	
		                        
		                        
                        		
                        		
                        			
			                        
			                        	옛날에 주공周公이 고대 삼황오제三皇五帝의 도를 고찰하고 하夏나라와 은殷나라의 제도를 조정하여 예악禮樂 문물을 창제하고 인의仁義의 도리로 천하를 다스렸다.
			                              
                        			
                        		
                        		
	                     		
			                       	
			                       	
	                     		
		                        
                        	
		                        
		                        
		                        
		                        
                        		
                        	
		                        
		                        
		                        
		                        	
		                        	
		                        
		                        
                        		
                        		
                        			
			                        
			                        	그 덕화德化와 형정刑政이 《시경詩經》 속에 남아 있는데, 유왕幽王과 여왕厲王이 도를 잃어버린 뒤에야 비로소 변풍變風과 변아變雅가 지어졌다.
			                              
                        			
                        		
                        		
	                     		
			                       	
			                       	
	                     		
		                        
                        	
		                        
		                        
		                        
		                        
                        		
                        	
		                        
		                        
		                        
		                        	
		                        	
		                        
		                        
                        		
                        		
                        			
			                        
			                        	평왕平王이 동쪽 낙양洛陽으로 도읍을 옮기자, 제후들이 힘으로 정사를 하였고 오패五霸 이후에 이르러서는 성군의 도가 한 오라기의 실처럼 간들간들 위태로워졌다.
			                              
                        			
                        		
                        		
	                     		
			                       	
			                       	
	                     		
		                        
                        	
		                        
		                        
		                        
		                        
                        		
                        	
		                        
		                        
		                        
		                        	
		                        	
		                        
		                        
                        		
                        		
                        			
			                        
			                        	이 때문에 공자께서 예악禮樂을 제정하고 《춘추春秋》를 지었으니, 그런 뒤에 느슨했던 삼대三代의 유풍이 다시 팽팽해졌으나 시대가 혼란하고 지위도 없어 공적이 천하에 널리 파급되지는 못하고 그저 문인들이 그 말씀을 전수할 뿐이었으며, 이처럼 쇠퇴해진 상태로 전국시대에 이르렀다.
			                              
                        			
                        		
                        		
	                     		
			                       	
			                       	
	                     		
		                        
                        	
		                        
		                        
		                        
		                        
                        		
                        	
		                        
		                        
		                        
		                        	
		                        	
		                        
		                        
                        		
                        		
                        			
			                        
			                        	그러자 신불해申不害와 상앙商鞅의 가혹한 법과 손무孫武와 오기吳起의 권모술수로 인해 삼족三族을 멸하는 것으로 논죄하고 사람을 죽여 시체가 온 성안에 널려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담론을 전개하는 자들이 또 신도愼到‧묵적墨翟‧소진蘇秦‧장의張儀를 으뜸으로 여기게 되니, 공자의 도가 거의 사라져 뜻있는 인물들이 매우 한스럽게 여겼다.
			                              
                        			
                        		
                        		
	                     		
			                       	
			                       	
	                     		
		                        
                        	
		                        
		                        
		                        
		                        
                        		
                        	
		                        
		                        
		                        
		                        	
		                        	
		                        
		                        
                        		
                        		
                        			
			                        
			                        	이 때문에 맹가孟軻가 앞에서 도를 밝히고 순경荀卿이 그 뒤에서 도를 일으켜 세웠던 것이다.
			                              
                        			
                        		
                        		
	                     		
			                       	
			                       	
	                     		
		                        
                        	
		                        
		                        
		                        
		                        
                        		
                        	
		                        
		                        
		                        
		                        	
		                        	
		                        
		                        
                        		
                        		
                        			
			                        
			                        	교훈이 될 만한 말을 하고 사물의 이치를 지시할 때 나라를 다스리는 요지에 근간을 두었고, 옛날의 이상적인 법도를 서술하고 당대의 불합리한 현상을 지적하여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고 다스리는 법도를 일으켜 세우기를 마치 손바닥을 뒤집듯이 쉽게 한 것을 살펴보니, 참으로 한 세상에 이름을 떨친 선비이며 제왕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그 글 또한 육경六經의 우익羽翼이 되고 공자의 가르침에 빛을 보태었으니, 그저 제자諸子의 설에 그치고 마는 정도가 아니다.
			                              
                        			
                        		
                        		
	                     		
			                       	
			                       	
	                     		
		                        
                        	
		                        
		                        
		                        
		                        
                        		
                        	
		                        
		                        
		                        
		                        	
		                        	
		                        
		                        
                        		
                        		
                        			
			                        
			                        	대체로 주공周公이 예악禮樂 문물을 창제하고 공자가 그것을 전승하고 순자荀子와 맹자孟子가 그것을 도와 완성하였기에 성왕聖王의 도가 공고해져 매우 깊어지고 완비되었으니, 이로 인해 비록 춘추春秋 때 사방 오랑캐가 번갈아 침범하고 전국戰國 때 삼강三綱의 인륜이 끊어졌음에도 유가儒家의 도가 끝내 땅에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말단 관직을 수행하는 여가에 옛 전적을 자주 보면서 내심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와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의 유풍이 우리 당唐나라에 충분히 남아 있지는 않지만, 순자荀子와 맹자孟子가 이 시대의 정사에 공이 있다고 여겨 더욱 좋아하고 흠모하였다.
			                              
                        			
                        		
                        		
	                     		
			                       	
			                       	
	                     		
		                        
                        	
		                        
		                        
		                        
		                        
                        		
                        	
		                        
		                        
		                        
		                        	
		                        	
		                        
		                        
                        		
                        		
                        			
			                        
			                        	그런데 《
맹자孟子》는 
조씨趙氏의 《
장구章句》가 있고 
注+신 선겸先謙이 살펴보건대, 태주본台州本에는 〈‘씨氏’가〉 ‘대代’로 되어 있다. 또한 
박사博士를 두어 전수하고 학습하는 일이 끊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군자들이 그 글을 좋아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순자荀子》는 주해注解가 없고 게다가 또 죽간竹簡을 엮었던 끈이 썩어 죽간竹簡이 떨어져나갔으며 서로 전하여 베끼는 과정에 오류가 생겨서, 비록 관심을 가진 사람이 이따금 훑어보더라도 글 뜻이 통하지 않아 매번 책을 덮어버리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대체로 논리가 잘 이해되면 마음에 흡족하고, 문장이 어긋나면 기분에 거슬리는 법이다.
			                              
                        			
                        		
                        		
	                     		
			                       	
			                       	
	                     		
		                        
                        	
		                        
		                        
		                        
		                        
                        		
                        	
		                        
		                        
		                        
		                        	
		                        	
		                        
		                        
                        		
                        		
                        			
			                        
			                        	순자荀子의 논리를 모르는 자는 이단異端이라 하여 그 책을 읽지 않고, 책을 읽는 자는 오탈자로 인해 끝까지 읽지 않고 그만두니, 이 때문에 순씨荀氏의 글이 천년이 되도록 빛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함부로 나의 생각을 토로하여 문장의 의미를 다각도로 탐구하고, 고증할 적에는 여러 서적에서 널리 추심하였다.
			                              
                        			
                        		
                        		
	                     		
			                       	
			                       	
	                     		
		                        
                        	
		                        
		                        
		                        
		                        
                        		
                        	
		                        
		                        
		                        
		                        	
		                        	
		                        
		                        
                        		
                        		
                        			
			                        
			                        	다만, 옛날과 지금의 글자가 다르고 제齊나라와 초楚나라의 말이 달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증을 광범위하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편방偏傍이 서로 비슷하거나 성음聲音이 서로 통하는 것을 취하기도 하고, 혹은 글자 수가 적어 더 보태거나 문구가 겹쳐 삭제하기 하고, 혹은 옛 글자에서 구하기도 하고, 혹은 방언方言에서 고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의 고루한 식견과 우매한 자질로 이 일을 수행하였으니, 견강부회하였다는 문책을 어디서 면할 수 있겠는가.
			                              
                        			
                        		
                        		
	                     		
			                       	
			                       	
	                     		
		                        
                        	
		                        
		                        
		                        
		                        
                        		
                        	
		                        
		                        
		                        
		                        	
		                        	
		                        
		                        
                        		
                        		
                        			
			                        
			                        	애당초 선현의 심오한 뜻을 조금도 밝혀내지는 못하고 그저 그 번잡한 상태만 추가했을 뿐이다.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살펴보는 용도로 이용할 뿐 감히 후세에 전하지는 못하겠다.
			                              
                        			
                        		
                        		
	                     		
			                       	
			                       	
	                     		
		                        
                        	
		                        
		                        
		                        
		                        
                        		
                        	
		                        
		                        
		                        
		                        	
		                        	
		                        
		                        
                        		
                        		
                        			
			                        
			                        	글의 분량이 많기 때문에 이전에 12권 32편으로 되어 있던 것을 나누어 20권으로 만들고, 또 《손경신서孫卿新書》란 이름을 《순경자荀卿子》로 바꾸었다.
			                              
                        			
                        		
                        		
	                     		
			                       	
			                       	
	                     		
		                        
                        	
		                        
		                        
		                        
		                        
                        		
                        	
		                        
		                        
		                        
		                        	
		                        	
		                        
		                        
                        		
                        		
                        			
			                        
			                        	편의 차례 또한 많이 바꿔 내용이 유사한 것끼리 서로 모이게 하였다.
			                              
                        			
                        		
                        		
	                     		
			                       	
			                       	
	                     		
		                        
                        	
		                        
		                        
		                        
		                        
                        		
                        	
		                        
		                        
		                        
		                        	
		                        	
		                        
		                        
                        		
                        		
                        			
			                        
			                        	이때는 무술년 
대당大唐 예성문무황제睿聖文武皇帝(憲宗) 
원화元和 13년(818) 12월이다.
注+노문초盧文弨가 말하기를 “전습부절傳習不絕이 세간의 통행본에는 ‘전서부절傳誓不絕’로 되어 있고, 신서申抒가 송본宋本에는 ‘신저申杼’로 되어 있다. 삼십이편三十二篇 네 자가 원각본元刻本에는 없다. 또 《순자荀子》가 서문에 《순경자荀卿子》로 되어 있어 여러 서적에 인용된 서명과 부합된다.”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