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3 大節非也면 小節雖是也나 吾無觀其餘矣라하니라 成侯嗣公은 聚斂計數之君也로
注
成侯嗣公은 皆衛君也라 史記에 衛聲公卒에 子成侯立하고 成侯卒에 子平侯立하고 平侯卒에 子嗣君立이라하니라
韓子曰 衛嗣公重如耳하고 愛泄姬하되 而恐其皆因其愛重以雍己也라
乃貴薄疑以敵如耳하고 尊魏妃以耦泄姬하여 曰 以是相參也라하니라
又使客過關市
하여 賂之以金
이라 後召關市
하여 問其有客過
하여 與汝金
이어늘 汝
遣之
아하니
關市大恐하여 以嗣公爲明察이라하니라 此皆計數之類也라
○盧文弨曰 所引韓子는 見內儲說上篇이라 魏妃作魏姬하고 汝回遣之作汝因遣之하니라
큰 원칙이 틀렸다면 작은 원칙이 비록 맞더라도 나는 그 나머지를 보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성후成侯와 사공嗣公은 백성의 재물을 착취하고 계산을 잘하는 군주로
注
양경주楊倞注:성후成侯와 사공嗣公은 모두 위衛나라 군주이다. ≪사기史記≫ 〈위강숙세가衛康叔世家〉에 “위 성공衛 聲公이 죽은 뒤에 그의 아들 성후成侯가 즉위하고 성후成侯가 죽은 뒤에 그의 아들 평후平侯가 즉위하고 평후平侯가 죽은 뒤에 그의 아들 사군嗣君이 즉위하였다.”라고 하였다.
≪한비자韓非子≫에 “위 사공衛 嗣公이 여이如耳를 중시하고 설희泄姬를 총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이 스스로 총애를 받고 있다는 것을 믿고 자기를 속일까 두려웠다.
그래서 박의薄疑의 위상을 높여 여이如耳와 필적하게 하고 위비魏妃를 존중하여 설희泄姬와 대등하게 하면서 하는 말이 ‘이 방법을 통해 그들로 하여금 서로 견제하게 하였다.’고 했다.”라고 하였다.
또 “그가 외지의 행상으로 가장한 사람을 파견하여 관문關門의 저자를 통과할 때 관리에게 금을 뇌물로 주게 하였다.
나중에 관문關門 저자의 관리를 불러 ‘아무 때 외지에서 온 행상이 관문關門을 통과할 때 너에게 금을 주자 네가 그를 놓아 보내줬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으니, 관문關門 저자의 관리가 매우 두려워하면서 사공嗣公은 미세한 일도 잘 살핀다고 여겼다.”라고 하였다. 이는 모두 계산에 관한 사례들이다.
○노문초盧文弨:〈양씨楊氏의 주注에〉 인용한 ≪한비자韓非子≫의 내용은 〈내저설 상內儲說 上〉편에 보인다. 거기에 ‘위비魏妃’는 ‘위희魏姬’로 되어 있고 ‘여회견지汝回遣之’는 ‘여인견지汝因遣之’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