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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集解(1)

순자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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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집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5-6 形不勝心하고 心不勝術이라
術正而心順之 則形相雖惡而心術善하여 無害爲君子也 形相雖善而心術惡이면 無害爲小人也
君子之謂吉하고 小人之謂凶이라
故長短小大善惡形相 非吉凶也 古之人無有也 學者不道也
蓋帝堯長하고 帝舜短하며 文王長하고 周公短하며 仲尼長하고 子弓短하니라
子弓 蓋仲弓也
漢書儒林傳馯臂字子弓이니 江東人이며 受易者也라하니라
然馯臂傳易之外 更無所聞이라
荀卿論說 常與仲尼相配하니 必非馯臂也
馯音寒이라
○ 俞樾曰 楊注 子弓 蓋仲弓이라하니 是也
又曰 言子者 著其爲師也라하니 則恐不然이라
仲弓稱子弓 猶季路稱子路耳
子路子弓也 其字也
曰季曰仲 至五十而加以伯仲也


생김새는 심성을 이겨내지 못하고, 심성은 〈처세하는〉 방법을 이겨내지 못한다.
〈처세하는〉 방법이 바르고 심성이 또 그것을 따른다면, 생김새가 비록 추하더라도 심성과 〈처세하는〉 방법이 좋아 그가 군자가 되는 데에 문제가 없을 것이며, 생김새가 비록 좋더라도 심성과 〈처세하는〉 방법이 나쁘다면 소인이 되는 데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군자를 길하다고 말할 수 있고, 소인을 흉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장의 장단, 몸집의 대소, 얼굴이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하는 등 생김새는 길흉의 표시가 아니니, 옛날 사람은 〈이것을 고려하는 일이〉 없었고 학식 있는 사람도 이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대체로 임금은 장신이고 임금은 단신이며, 문왕文王은 장신이고 주공周公은 단신이며, 중니仲尼(孔子)는 장신이고 자궁子弓은 단신이었다.
양경주楊倞注 : 자궁子弓은 아마도 중궁仲弓일 것이다.
’라고 말한 것은 그가 자기의 스승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한서漢書》 〈유림전儒林傳〉에 의하면 한비馯臂의 자는 자궁子弓인데 강동江東 사람이며 《주역周易》을 전수한 자라고 하였다.
그러나 한비馯臂가 《주역周易》을 전수했다는 것 이외에는 더 이상 알려진 내용이 없다.
순경荀卿이 말을 전개할 때 〈자궁子弓을〉 항상 중니仲尼와 짝을 맞췄으니, 필시 한비馯臂는 아닐 것이다.
은 음이 이다.
유월俞樾 : 양씨楊氏의 주에 “자궁子弓은 아마도 중궁仲弓일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옳다.
또 “‘’라고 말한 것은 그가 자기의 스승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중궁仲弓자궁子弓이라 부른 것은 계로季路자로子路라고 부른 경우와 같을 뿐이다.
자로子路자궁子弓이니 하는 것은 그 자이다.
’라 이르고 ‘’이라 이르는 것은 50세가 된 뒤에 형제의 서열인 ‘’이니 ‘’이니 하는 글자를 붙이는 것이다.
仲弓(子弓)仲弓(子弓)
文王文王


역주
역주1 子弓……著其爲師也 : 이에 대해 高麗 때 李齊賢은 《櫟翁稗說》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荀子는 매양 子弓을 夫子(孔子)와 동격으로 치켜세워 仲尼니 자궁이니 하였다. 唐나라 楊倞이 말하기를 ‘子弓은 아마도 仲弓일 것이다. 子라고 말한 것은 그가 자기의 스승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하였다. 내가 상고해보건대, 荀卿은 孟子보다 뒤에 태어났고 중궁은 子思보다 먼저 태어났다. 맹자도 자사에게 직접 배우지 못하고 자사의 門人에게 受業하였는데 순경이 어떻게 중궁을 師事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자궁이라는 사람이 응당 따로 또 한 사람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궁의 功德이 세상에 전해지지 않았으니 과연 부자와 짝할 만한 사람이었는지 의심스럽다. 그 제자인 순자가 주장한 性惡說 하나만 보더라도 그 淵源을 알 수 있는데, 하물며 다시 전수받은 사람이 詩書를 불태우고 선비를 생매장한 李斯가 아닌가!”
역주2 (耳)[也] : 저본에는 ‘耳’로 되어 있으나, 《漢文大系》본 《荀子集解》에 의거하여 ‘也’로 바로잡았다.

순자집해(1) 책은 2024.01.0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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