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詩는 謂樂章이니 所以節聲音하여 至乎中而止하여 不使流淫也라
○ 郝懿行曰 按下文方云 樂之中和는 詩書之博이라하여 詩樂分言하니 則此中聲疑非即謂樂章이라
先謙案 下文詩樂分言이나 此不言樂은 以詩樂相兼也라
先王惡其亂이라 故制雅頌之聲以道之하여 使其聲足以樂而不流라하니 與此言詩爲中聲所止와 可互證이라
《시경詩經》이란 중화中和를 이룬 가락이 담겨 있는 것이고,
注
양경주楊倞注 : 《시경詩經》은 악장을 말하니, 가락을 조절하여 중화中和의 수준에 도달한 뒤에 멈춤으로써 음탕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원년元年에 “중화中和의 가락을 얻은 뒤에는 연주를 마친다.
오성五聲이 이미 중화中和의 가락을 이루어 연주를 마친 뒤에는 더 이상 음악을 연주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 학의행郝懿行 : 살펴보건대, 아래 글에 곧 ‘음악의 중화中和를 이룬 가락과 《시경詩經》‧《서경書經》의 넓은 내용’이라고 언급하여 시詩와 악樂을 구분하여 말했으니, 이곳의 ‘중성中聲’은 악장만 가리킨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시경詩經》 3백 편이 반드시 모두 중화中和의 가락에 부합된 것은 아니다.
공부자孔夫子께서 〈관저關雎〉에 대해서만 음탕하지도 않고 상심하지도 않았다고 말씀하셨으니, 나머지 다른 시들은 반드시 다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겸안先謙案 : 아래 글에서는 시와 음악을 구분해 말했으나 여기서는 음악을 말하지 않은 이유는 시와 음악이 본디 서로를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론樂論〉篇에 “즐거우면 겉으로 나타내는 일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겉으로 나타내되 도리를 따르지 않는다면 난잡한 일이 없을 수 없다.
옛 성왕聖王이 그 난잡한 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에 〈아雅〉‧〈송頌〉의 가락을 만들어 사람들을 인도함으로써 그 가락이 충분히 즐거움을 느끼게 하면서도 방탕하지 않도록 했던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곳의 “《시경詩經》이란 중화中和를 이룬 가락이 담겨 있는 것이다.”고 말한 것과 상호 증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