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9 心好利而穀祿莫厚焉이라 合天下之所同願兼而有之하고 睪牢天下而制之若制子孫하니라
注
睪牢는 未詳이라 睪은 或作畢하니 言盡牢籠天下也라 新序에 作宰牢라
或曰 睪은 讀如以薅荼蓼之薅요 牢는 與漢書丘㛐轑釜之轑義同하니 皆料理斡運之意也라하니라
○盧文弨曰 案後漢書馬融傳皋牢陵山의 章懷注云 皋牢는 猶牢籠也라하니 引此作皋牢라 皋는 俗作皐하고 亦轉爲睪이라
郝懿行曰 案干祿字書에 睪은 俗皋字라하니라 蓋皋는 俗作皐하니 譌轉爲睪하고 又復加頭作睾하여 以別於睪이라
此正如漢成皋 印文
에 作白下人人下羊
하고 又作
下羊
하여 展轉增譌
하니 卽此類也
라
皋韜
는 爲覆冒之意
라 故皋牢亦爲牢籠
하니 皆
字也
라 馬融傳云 皋牢陵山
의注
에 引此卽作皋字
하니 是已
라
然攷睾字
는 由來已久
라言 睾子佐禹
라하고 顔氏家訓
에 皐分澤片
이라하니라
蓋此俗字起於六朝以前
하니 正
所偁近鄙別字者也
라 皋與宰
는 音義異
나 而古書亦通用
이라
故此睾牢 楊注引新序
注+라作宰牢
하고 又列子望其壙宰如 此書大略篇
에 作皋如
하니 皆其證矣
라
마음이 재리財利를 좋아하지만 봉록이 〈왕자王者가 얻은 것보다〉 더 많을 수는 없다. 왕자王者는 온 천하 사람이 다 같이 바라는 것들을 모두 겸하여 차지하고 온 천하를 한꺼번에 제어하기를 마치 자기 자손을 제어하듯이 한다.
注
양경주楊倞注:역뢰睪牢는 알 수 없다. 역睪은 간혹 ‘필畢’로 쓰기도 하니, 천하를 모두 포괄한 것을 말한다. ≪신서新序≫에는 ‘재뢰宰牢’로 되어 있다.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에 “연燕나라 태자 단丹이 형가荊軻에게 이르기를 ‘진秦나라는 공적을 욕심내는 마음이 있으니, 천하의 땅을 다 차지하고 사해四海의 왕을 손아귀에 넣지 않으면[비진천하지지 뇌해내지왕非盡天下之地 牢海內之王] 그 뜻이 만족해하지 않을 것이다.’라 했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역睪은 ≪시경詩經≫ 〈주송 양사周頌 良耜〉의 ‘이호도료以薅荼蓼(씀바귀며 여뀌 등 잡초를 매네.)’의 호薅자처럼 읽어야 하고, 뇌牢는 ≪한서漢書≫ 〈초원왕전楚元王傳〉의 ‘구수로부丘㛐轑釜(큰형수가 국자로 솥 밑바닥을 긁었다.)’의 로轑의 뜻과 같으니, 이 두 자가 모두 요리하고 휘돌리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노문초盧文弨:살펴보건대, ≪후한서後漢書≫ 〈마융전馬融傳〉 “고뢰능산皋牢陵山(언덕과 산을 뒤덮었다.)”의 장회章懷 주에 “고뢰皋牢는 감싼다는 뜻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인용하여 ‘고뢰皋牢’로 쓴 것이다. ‘고皋’는 속자로는 고皐로 쓰고 이것이 또 ‘역睪’이 되었다.
학의행郝懿行:살펴보건대, ≪간록자서干祿字書≫에 “역睪은 속자로 ‘고皋’자이다.”라고 하였다. 대체로 ‘고皋’는 속자로 ‘고皐’를 쓰니, 이것이 잘못 변해 ‘역睪’이 되었고 또다시 머리쪽에 한 점을 붙여 ‘고睾’자가 됨으로써 ‘역睪’과 구별되었다.
이것은 꼭
한漢나라 지명인
성고成皋의 〈‘
고皋’자가〉 인쇄한 판본에 ‘
백白’ 밑에 ‘
인人’이 붙고 그 ‘
인人’ 밑에 ‘
양羊’이 붙는 글자(
)로 되고 또 ‘
망𦉫’ 밑에 ‘
양羊’이 붙는 글자(
)로 되어 자꾸 더 잘못되어진 것과 같으니, 곧 이런 경우이다.
‘고도皋韜’는 덮어씌운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고뢰皋牢’도 감싼다는 뜻이 되는 것이니, 이는 모두 쌍성雙聲과 첩운疊韻의 글자이다. ≪한서漢書≫ 〈마융전馬融傳〉 “고뢰능산皋牢陵山”의 장회章懷 주에서 ≪순자荀子≫의 이 부분을 인용한 곳에 ‘고皋’자로 되어 있으니, 곧 이것이다.
그러나 ‘고睾’자를 살펴보면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다. 조대가曹大家가 “고자좌우睾子佐禹(고요睾陶의 아들이 우禹를 보좌하였다.)”라 하고, ≪안씨가훈顔氏家訓≫ 〈서증書證〉에 “고분택편皐分澤片(‘고皐’자는 ‘택澤’의 반쪽을 나누어 ‘역睪’이 되었다.)”이라 하였다.
대체로 이것은 속자로서 육조六朝 이전에 생긴 것이니, 곧 주육朱育이 말한 ‘천근하고 비속한 별체의 글자’라는 것이다. 고皋와 재宰는 그 음과 뜻이 다르지만 옛 서적에서는 이 또한 통용하였다.
그러므로 ‘
고뢰睾牢’가
양씨楊氏의 주에 인용한 ≪
신서新序≫에
注+‘금본今本’ 두 자는 없다. ‘
재뢰宰牢’로 되어 있고, 또 ≪
열자列子≫ 〈
천서天瑞〉의 “
망기광재여望其壙宰如(저 무덤을 바라보면 언덕과도 같다.)”의 〈
재여宰如가〉 이 책의 〈
대략편大略篇〉에 ‘
고여皋如’로 되어 있으니, 이것들이 모두 그 증거이다.
왕염손王念孫:이 글자(역睪)에 관해서는 ≪곤학기문困學紀聞≫ 권10 〈제자諸子〉에서 이미 논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