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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集解(6)

순자집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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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68 臨患難而不忘之言이라
尸子 曰 君子漸於飢寒而志不僻하고 侉於五兵而辭不懾하고 臨大事不忘昔席之言이라하니
昔席 蓋昔所踐履之言이라 此細 亦當讀爲昔이라 或曰 細席 講論之席이니 臨難不忘素所講習忠義之言이라
漢書王吉諫昌邑王曰 廣廈之下 細旃之上이라하니라
○盧文弨曰 案廣韻 痛呼也 安賀切이라하니라 宋本 作銙어늘 字書無攷 今從元刻이라
郝懿行曰 細席 恐茵席之形譌 蓋茵假借爲絪하고 絪又譌爲細耳
王念孫曰 郝說是也 漢書霍光傳 加畫繡絪馮 如淳曰 絪亦茵이라하니 是其證이라
茵席之言 謂昔日之言이니 即論語所謂平生之言也 故尸子云 臨大事不忘昔席之言이라하니라
俞樾曰 郝王之說塙矣 楊注引尸子 臨大事不忘昔席之言 亦茵之譌
荀子 作細席者 其原文是絪席也 尸子 作昔席者 其原文是茵席也 兩文雖異而實同이라


환난患難에 직면하더라도 지난날 〈강론하는〉 자리에서 하던 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양경주楊倞注:≪시자尸子≫에 “자하子夏가 ‘군자君子는 굶주림과 추위의 고통을 많이 겪더라도 심지心志가 비뚤어지지 않고, 흉기의 위협을 받더라도 말이 〈엄정嚴正하여〉 두려워하지 않고, 큰일에 직면하더라도 지난날 강론하는 자리에서 하던 말을 잊지 않는다.[臨大事不忘昔席之言]’라 했다.”라고 하였으니,
석석昔席은 지난날 실천했던 말이다. 이곳의 는 또한 마땅히 ‘’으로 읽어야 한다. 혹자는 “세석細席은 강론하는 자리이니, 환난患難에 직면하더라도 평소에 강론하고 익힌 충성과 도의道義에 관한 말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서漢書≫ 〈왕길전王吉傳〉에, 왕길王吉창읍왕昌邑王에게 간하기를 ‘광하지하廣廈之下 세전지상細旃之上(넓은 저택 안과 고운 털방석 위에서 〈현명한 스승이 앞에 앉아 있고 글 배우는 제자가 뒤에서 글을 읽는다.〉)’이라 했다.”라고 하였다.
노문초盧文弨:살펴보건대, ≪광운廣韻≫에 “는 고통스러워 소리친다는 뜻이니, 〈그 음이〉 의 반절이다.”라고 하였다. 〈양씨楊氏 주에 인용된 ≪시자尸子≫의〉 송본宋本에는 ‘’로 되어 있는데, 자서字書에는 알아볼 곳이 없다. 여기서는 원각본元刻本을 따랐다.
학의행郝懿行:‘세석細席’은 아마도 ‘인석茵席’의 모양이 잘못된 것 같다. 대개 ‘’의 가차자假借字로 ‘’이 되었고, ‘’이 또 잘못되어 ‘’로 되었을 것이다.
왕염손王念孫학씨郝氏의 설이 옳다. ≪한서漢書≫ 〈곽광전霍光傳〉의 “가화수인빙加畫繡絪馮(아름답게 수놓은 방석 등을 추가하였다.)”이라 한 곳의 주에 홍여순洪如淳이 “ 또한 이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그 증거이다.
인석지언茵席之言은 지난날에 했던 말을 이르니, 곧 ≪논어論語≫ 〈헌문憲問〉의 이른바 ‘평생지언平生之言(평소에 했던 말)’이다. 그러므로 ≪시자尸子≫에 ‘臨大事不忘昔席之言’이라 한 것이다.
유월俞樾학씨郝氏왕씨王氏의 설은 틀림없다. 양씨楊氏의 주에 인용한 ≪시자尸子≫의 ‘’은 이 또한 ‘’의 잘못이다.
순자荀子≫에 ‘세석細席’으로 되어 있는 것은 그 원문이 ‘인석絪席’이고, ≪시자尸子≫에 ‘석석昔席’으로 되어 있는 것은 그 원문이 ‘인석茵席’이니, 두 글이 다르지만 사실은 같다.


역주
역주1 細席 : 郝懿行은 細자가 ‘茵’의 잘못이라고 하였으나, 王天海는 楊倞의 주에 따라 ‘昔席’으로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細자와 昔자는 음이 가까워 잘못된 것이라고 하였다.
역주2 子夏 : 孔子의 제자 卜商의 자이다. 春秋 때 衛나라 사람이다. 문학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유명하고 ≪詩經≫의 序를 짓고 ≪周易≫을 풀이하였으며 魏 文侯의 스승이 되었다.

순자집해(6)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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