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27 今夫亡箴者 終日求之而不得이라가 其得之는 非目益明也라 眸而見之也라 心之於慮亦然이라
注
眸는 謂以眸子審視之也라 言心於思慮에 亦當反覆盡其精妙를 如眸子之求箴也라
○俞樾曰 楊說未安이라 以眸子審視를 豈可但謂之眸乎아
眸는 當讀爲𥈆라 說文目部에 𥈆는 低目視也라 從目冒聲이라하니 與牟聲相近이라
釋名釋首飾曰 牟는 冒也라하니 眸之與𥈆는 猶牟之與冒矣라
說文에 又有瞀篆曰 低目謹視也라 從目敄聲이라하니 亦與牟聲相近이라
荀子成相篇
에 身讓
隨舉牟光
은 即莊子大宗師篇之務光也
니 是其例矣
라
지금 바늘을 잃어버린 어떤 사람이 온종일 찾아도 얻지 못하다가 나중에 그것을 얻은 것은 눈이 더 밝아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눈을 내리깔고 신중히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무엇을 생각하는 것 또한 그러하다.
注
양경주楊倞注:모眸는 눈동자로 사물을 살펴보는 것을 이른다. 마음이 무엇을 생각할 때도 마땅히 반복하여 더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게 생각하기를 마치 눈동자로 바늘을 찾듯이 해야 한다는 말이다.
○유월俞樾:양씨楊氏의 설은 온당치 못하다. 눈동자로 살펴보는 것을 어찌 ‘모眸’라고만 이를 수 있겠는가.
모眸는 마땅히 ‘𥈆’로 읽어야 한다. ≪설문해자說文解字≫ 목부目部에 “𥈆는 눈을 내리깔아 본다는 뜻이다. 목目은 형부形符가 되고, 모冒는 성부聲符가 된다.”라고 하였으니, 모牟의 소리와 서로 가깝다.
≪석명釋名≫ 〈석수식釋首飾〉에 “모牟는 ‘모冒’이다.”라고 하였으니, 모眸가 𥈆와 같은 것은 모牟가 모冒와 같은 경우와 같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또 ‘무瞀’자가 전서篆書로 된 것이 있는데, 거기에 “눈을 내리깔아 신중히 본다는 뜻이다. 목目은 형부形符이고, 무敄는 성부聲符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또한 모牟의 소리와 서로 가깝다.
≪순자荀子≫ 〈성상편成相篇〉(25-76)에 “신양변수여모광身讓卞隨舉牟光(변수卞隨에게 왕위를 양보한 뒤에 또 이에 모광牟光에게 넘기려 했네.)”이라고 한 〈모광牟光은〉 곧 ≪장자莊子≫ 〈대종사편大宗師篇〉의 무광務光이니, 이것이 그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