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荀子集解(6)

순자집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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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집해(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5-93 任用讒夫不能制하리라 公長父하여
皆厲王之嬖臣이나 未詳其姓名이라 墨子曰 厲王染於公長父榮夷終이라하되
公與孰公不同하니 未知孰是 或曰 孰公長父 或爲郭이라
○盧文弨曰 案古郭虢字通이라 郭公長父 即呂氏春秋當染篇之虢公長父也 作郭字爲是
之難二字 當屬下爲七字句
宋本從立하고 元刻從糸이로되 字書皆無攷 墨子所染篇作厲公이라
王念孫曰 之者 是也 言難厲王者是此人也 楚語云 이라하니 實難即是難이라
俞樾曰 之難厲王流于彘七字爲句 義終未安이라
此篇之例 雖以兩三字句 一七字句 一四字句 一七字句爲一節이나 然古人之文 變動不居하니
如云 治之道 美不老하니 君子由之佼以好로다 下以教誨子弟하고 上以事祖考
此節詞意明白하고 無奪文譌字하니 其弟四句六字 其弟句五字 豈能以子弟二字屬下爲七字句乎
然則此文以郭公長父之難六字爲句하고 厲王流于彘五字爲句 於義較安하니 不必拘泥字數하여 轉致不通也
先謙案 俞說是


참소하는 사람을 임용하고는 〈뜻대로 마음대로〉 제어 못하리 〈참소하는 저 사람〉 곽공장보郭公長父는 〈세상에 보기 드문〉 재난 초래해
양경주楊倞注숙공孰公장보長父는 모두 여왕厲王이 총애하는 신하이나 그 성명을 알 수 없다. ≪묵자墨子≫ 〈소염所染〉에 “여왕염어厲王染於公長父榮夷終(여왕厲王공장보公長父영이종榮夷終에게 물들었다.)”이라 하였는데, ‘
’과 ‘숙공孰公’은 같지 않으니,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혹자는 “숙공장보孰公長父는 곧 ≪시경詩經≫에서 말한 ‘황보皇父’이다.”라고 하였다. 은 〈문헌에 따라〉 간혹 ‘’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노문초盧文弨:살펴보건대, 옛날에는 ‘’과 ‘’자는 통용하였다. 곽공장보郭公長父는 곧 ≪여씨춘추呂氏春秋≫ 〈당염편當染篇〉의 ‘괵공장보虢公長父’이다. ‘’으로 된 것이 옳다.
지난之難’ 두 자는 마땅히 밑으로 붙여 일곱 자 구가 되어야 한다. 〈양씨楊氏〉 주의
’은 송본宋本에는 형부形符이고 원각본元刻本에는 형부形符(𦆨)인데, 자서字書에 모두 고증할 곳이 없다. ≪묵자墨子≫ 〈소염편所染篇〉에는 ‘여공厲公’으로 되어 있다.
왕염손王念孫:‘’란 ‘’와 같으니, 여왕厲王에게 재난을 끼친 자가 곧 이 사람이라는 말이다. ≪국어國語≫ 〈초어楚語〉에 “진징아실난환경秦徵衙實難桓景(나라 〈공자함公子鍼이〉 북징北徵팽아彭衙 이것으로 환공桓公경공景公을 곤란하게 만들었다.)”이라 하였으니, ‘실난實難’은 곧 ‘시난是難’이다.
유월俞樾:‘지난려왕유우체之難厲王流于彘’ 일곱 자가 가 된다면 그 뜻이 아무래도 완전치 못하다.
이 편의 형식이 비록 세 자 두 구, 일곱 자 한 구, 네 자 한 구, 일곱 자 한 구가 한 로 되어 있다고는 하나, 옛사람의 글은 끊임없이 변화하여 고정된 형식이 없으니,
예를 들면 ‘치지도治之道 미불로美不老 군자유지교이호君子由之佼以好 하이교회자제下以教誨子弟 상이사조고上以事祖考(25-47~49)’라 한 경우가 그렇다.
은 글 뜻이 명백하고 빠진 글이나 잘못된 글자가 없으니, 네 번째 구는 여섯 자이고 다섯 번째 구는 다섯 자이다. 어찌 ‘자제子弟’ 두 자를 밑으로 붙여 일곱 자가 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여기 글도 ‘곽공장보지난郭公長父之難’ 여섯 자가 가 되고, ‘여왕유우체厲王流于彘’ 다섯 자가 가 되는 것이 뜻으로 볼 때 비교적 완전하니, 굳이 글자 수에 얽매여 오히려 뜻이 통하지 않게 할 것은 없다.
선겸안先謙案유씨俞氏의 설이 옳다.


역주
역주1 (孰)[郭] : 저본에는 ‘孰’으로 되어 있으나, 楊倞과 盧文弨의 주에 의거하여 ‘郭’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 동사로, ‘致’와 같다.
역주3 孰公長父 : 孰公은 ‘郭公’의 잘못이나, 교감하지 않았다. 楊倞은 ‘皆厲王之嬖臣’이라 하여 이를 두 사람으로 이해하였으나, 長父는 그의 자이므로 사실은 한 사람이다.
역주4 詩所云皇父 : 詩는 ≪詩經≫ 〈小雅 十月之交〉이다. 皇父는 厲王의 卿士로, 권력을 독단하여 현자를 구하지 않고 부자를 고위직에 앉히는가 하면 탐욕이 많아 백성들의 재물을 수탈한 인물이다. 이 시는 큰 고을을 새로 조성하느라 백성들이 노역에 동원되어 살아가기 힘들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역주5 秦徵衙實難桓景 : 徵衙는 北徵과 彭衙로 秦나라 公子鍼의 食邑이고, 實은 ‘寔’․‘是’와 같다. 桓景은 秦 桓公과 그의 아들 景公이다. 公子鍼은 景公의 동복아우인데, 부유하기가 국가와 맞먹을 정도여서 그 위상이 景公과 비슷하였으므로 景公이 위협을 느꼈다.
역주6 (七)[五] : 저본에는 ‘七’로 되어 있으나, 이 章에서 일곱 번째 구는 없고, 다섯 번째 구인 아래(25-94)의 ‘厲王流于彘’에 대한 설명이므로 ‘五’로 바로잡았다.

순자집해(6)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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