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는 皆厲王之嬖臣
이나 未詳其姓名
이라 墨子曰 厲王染於
公長父榮夷終
이라하되
公與孰公不同
하니 未知孰是
라 或曰 孰公長父
는 卽
也
라 孰
은 或爲郭
이라
○盧文弨曰 案古郭虢字通이라 郭公長父는 即呂氏春秋當染篇之虢公長父也라 作郭字爲是라
公
은 宋本從立
하고 元刻從糸
이로되 字書皆無攷
라 墨子所染篇作厲公
이라
王念孫曰 之者
는 是也
니 言難厲王者是此人也
라 楚語云
이라하니 實難即是難
이라
此篇之例 雖以兩三字句와 一七字句와 一四字句와 一七字句爲一節이나 然古人之文은 變動不居하니
如云 治之道는 美不老하니 君子由之佼以好로다 下以教誨子弟하고 上以事祖考라
此節詞意明白
하고 無奪文譌字
하니 其弟四句六字
요 其弟
句五字
라 豈能以子弟二字屬下爲七字句乎
아
然則此文以郭公長父之難六字爲句하고 厲王流于彘五字爲句 於義較安하니 不必拘泥字數하여 轉致不通也라
참소하는 사람을 임용하고는 〈뜻대로 마음대로〉 제어 못하리 〈참소하는 저 사람〉 곽공장보郭公長父는 〈세상에 보기 드문〉 재난 초래해
注
양경주楊倞注:
숙공孰公과
장보長父는 모두
여왕厲王이 총애하는 신하이나 그 성명을 알 수 없다. ≪
묵자墨子≫ 〈
소염所染〉에 “
여왕염어厲王染於公長父榮夷終(
여왕厲王은
공장보公長父와
영이종榮夷終에게 물들었다.)”이라 하였는데, ‘
‘
공公’과 ‘
숙공孰公’은 같지 않으니,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혹자는 “
숙공장보孰公長父는 곧 ≪
시경詩經≫에서 말한 ‘
황보皇父’이다.”라고 하였다.
숙孰은 〈문헌에 따라〉 간혹 ‘
곽郭’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노문초盧文弨:살펴보건대, 옛날에는 ‘곽郭’과 ‘괵虢’자는 통용하였다. 곽공장보郭公長父는 곧 ≪여씨춘추呂氏春秋≫ 〈당염편當染篇〉의 ‘괵공장보虢公長父’이다. ‘곽郭’으로 된 것이 옳다.
‘지난之難’ 두 자는 마땅히 밑으로 붙여 일곱 자 구가 되어야 한다. 〈양씨楊氏〉 주의
‘
공公’은
송본宋本에는
입立이
형부形符이고
원각본元刻本에는
사糸이
형부形符(𦆨)인데,
자서字書에 모두 고증할 곳이 없다. ≪
묵자墨子≫ 〈
소염편所染篇〉에는 ‘
여공厲公’으로 되어 있다.
왕염손王念孫:‘지之’란 ‘시是’와 같으니, 여왕厲王에게 재난을 끼친 자가 곧 이 사람이라는 말이다. ≪국어國語≫ 〈초어楚語〉에 “진징아실난환경秦徵衙實難桓景(진秦나라 〈공자함公子鍼이〉 북징北徵과 팽아彭衙 이것으로 환공桓公과 경공景公을 곤란하게 만들었다.)”이라 하였으니, ‘실난實難’은 곧 ‘시난是難’이다.
유월俞樾:‘지난려왕유우체之難厲王流于彘’ 일곱 자가 구句가 된다면 그 뜻이 아무래도 완전치 못하다.
이 편의 형식이 비록 세 자 두 구, 일곱 자 한 구, 네 자 한 구, 일곱 자 한 구가 한 절節로 되어 있다고는 하나, 옛사람의 글은 끊임없이 변화하여 고정된 형식이 없으니,
예를 들면 ‘치지도治之道 미불로美不老 군자유지교이호君子由之佼以好 하이교회자제下以教誨子弟 상이사조고上以事祖考(25-47~49)’라 한 경우가 그렇다.
이 절節은 글 뜻이 명백하고 빠진 글이나 잘못된 글자가 없으니, 네 번째 구는 여섯 자이고 다섯 번째 구는 다섯 자이다. 어찌 ‘자제子弟’ 두 자를 밑으로 붙여 일곱 자가 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여기 글도 ‘곽공장보지난郭公長父之難’ 여섯 자가 구句가 되고, ‘여왕유우체厲王流于彘’ 다섯 자가 구句가 되는 것이 뜻으로 볼 때 비교적 완전하니, 굳이 글자 수에 얽매여 오히려 뜻이 통하지 않게 할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