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1 文而致實하고 博而黨正이 是士君子之辯者也라
注
此明士君子之辯은 文而緻密堅實하고 博而昌明雅正하니 斯辯之善者也라
王念孫曰 致
는 讀爲質
이라注+襄三十年左傳에 用兩珪質于河라하니 釋文에 質은 如字라 又音致라하고 昭十六年에 與蠻子之無質也라하니 釋文에 質은 之實反이라 或音致라하니라 淮南要略에 約重致하고 剖信符라하니 重致即重質이라 質致古同聲이라 故字亦相通하니 說見唐韻正이라
質
은 信也
니注+見昭十六年二十年左傳注와 魯語晉語注라 謂信實也
라
致實與黨正對文
이라注+楊注에 黨은 與讜同이니 謂直言也라하니라
조리가 있으면서도 진실하고 범위가 넓으면서도 올바른 것이 곧 사군자 방식의 논변이다.
注
양경주楊倞注 : ‘문文’은 달변을 구사하는 어휘를 이른다.
‘당黨’은 ‘당讜’과 같으니, 곧은 말을 이른다.
일반적으로 말이 유려하면 거짓말하는 잘못이 생기고, 범위가 넓으면 줏대 없이 지껄이는 잘못이 생긴다.
○ 학의행郝懿行 : ‘치致’는 ‘치緻(촘촘하다)’자이고, ‘당黨’은 ‘당讜’자이니 모두 고금의 시대에 따라 달리 쓰는 글자이다.
‘당언讜言’은 곧 ‘창언昌言’이니 훌륭한 말을 이른다.
여기서는 사군자 방식의 논변은 조리가 있으면서도 치밀하고 견실하며, 범위가 넓으면서도 뜻이 분명하고 모범적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니, 이는 논변을 잘한 경우이다.
왕염손王念孫 : ‘
치致’는 ‘
질質’로 간주해 읽는다.
注+《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30년에 “용양규질우하用兩珪質于河(두 개의 옥규玉珪를 황하의 물속에 가라앉혀 성의를 표시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석문釋文》에 “‘질質’은 여자如字이니, 〈본음인 입성入聲으로 읽는다.〉 또 다른 음은 치致이다.”라고 하고, 소공昭公 16년에 “여만자지무질야與蠻子之無質也(蠻子가 신의가 없다.)”라고 하였는데, 《석문釋文》에 “‘질質’의 음은 지之와 실實의 반절反切이다. 간혹 음을 치致라 하기도 한다.”라고 하였다. 《회남자淮南子》 〈요략要略〉에 “약중치約重致 부신부剖信符(신의를 중시할 것을 맹약하고 부절을 나눠 가졌다.)”라고 하였는데, ‘중치重致’는 곧 ‘중질重質’이다. ‘질質’과 ‘치致’는 옛날에 음이 같았으므로 글자도 서로 통용하였다. 이에 관한 설명은 《당운정唐韻正》에 보인다.
‘
질質’은 ‘
신信’과 같으니,
注+《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소공昭公 16년과 20년 주注와, 《국어國語》 〈노어魯語〉와 〈진어晉語〉 주注에 보인다. 신의가 있고 진실한 것을 이른다.
‘
치실致實’과 ‘
당정黨正’은 대구이다.
注+양씨楊氏의 주에 “‘당黨’은 ‘당讜’과 같으니, 곧은 말을 이른다.”라고 하였다.